[쉬는 시간] 열심히 살아온 당신, 떠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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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는 시간] 열심히 살아온 당신, 떠나라!
  • 김경임 교수
  • 승인 2024.09.10 15: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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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때가 왔다. 숨 막히는 무더위와 일에 지친 몸과 마음을 일상에서 잠시 내려놓을 수 있는 시기. 우리가 8월을 기다리는 큰 이유 중 하나, 휴가다. 아마도 대부분 사람들은 이미 휴가를 떠났거나, 휴가 중이거나, 혹은 떠날 계획이 있는 이들은 기대와 설렘 속에서 출발까지의 하루하루를 세고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 휴가의 개념이 처음 도입된 것은 1970년대 중반이다. 지금은 휴가라는 단어가 바캉스라는 단어를 갈음하고 있으나, 당시에는 바캉스라는 단어가 훨씬 더 대중적이었다. 프랑스어인 바캉스(vacance)는 라틴어 바카티오(vacatio), 무엇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 비우는 것이라는 뜻에서 유래했다. 영어로 방학·휴가를 뜻하는 베케이션(vacation)도 같은 어원에서 나온 말이다. 어원에서 알 수 있듯, 휴가는 비움이자, 자유다. 매일의 일상에서 벗어나 자연이든, 시끌벅적한 휴가지든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 자신이 택한 방식으로 숨 고르기를 하며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간이다. 

바캉스라는 개념이 도입되기 전 우리나라의 휴가 형태는 아이들이 방학을 하면 시골 친척 집을 찾거나, 강이나 계곡에서 물놀이를 하는 정도가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소득 수준이 오르고, 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휴가를 위한 본격적인 장이 열렸다. 당시 가장 큰 인기를 누리던 휴가지는 강릉 경포대와 부산 해운대였다. 나 역시 어린 시절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구불구불한 대관령 길을 고속버스를 타고 다녔던 기억이 있다.

자가용이 흔하지 않았던 시절이라, 고속버스를 타고 대관령을 넘다 보면 멀미로 고생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러나 그나마도 경제적 사정이 넉넉지 않거나, 며칠씩 휴가를 내기가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배부른 투정에 가까웠다. 물론 지금은 그때보다는 훨씬 자유로운 형태의 휴가가 가능해졌다. 휴가 기간을 적절히 조절해 해외여행을 가는 사람들도 있고, 요새 유행하는 호캉스(hocance)나 스테이케이션(Staycation) 같은 유형의 휴가를 선택하는 사람들도 있다. 또는 휴가와 일을 절묘하게 섞은 워케이션(Worcation)을 선호하는 사람들도 있으며, 자율 휴가제를 적극 이용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사실, 휴가를 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휴가를 ‘어떻게’ ‘누구와’ ‘얼마 동안 가는가?’이다. 휴가가 실질적으로 쉼과 재충전의 효과를 내려면 일과 관련된 것들을 잊을 수 있을 만큼의 시간이 필요하다. 때문에, 휴가는 기간이 길면 길수록, 휴가지가 익숙한 장소와 멀면 멀수록 그 효과가 크다고 한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주위 사람들에게 스테이케이션을 그다지 권하지 않는다. 스테이케이션(Staycation)이란 머물다의 ‘stay’와 휴가의 ‘vacation’이 합성된 단어로, 개인 혹은 가족들이 집에서 머물거나 당일치기 여행이 가능한 가까운 장소로 휴가를 떠나는 것을 뜻한다. 물론 익숙한 장소에서 느낄 수 있는 안도감과 편안함이 있다.

그러나 익숙한 공간엔 일상의 걱정거리도 함께 있다. 그리고 그날그날 처리해야만 하는 일들이 숙제처럼 따라붙는다. 우리가 새로운 장소에 갔을 때 일상의 고민을 잊는 이유는 그곳엔 우리의 사적 기억이 축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습관적으로 머물던 시간과 자리에서 한발 빗겨서 그동안 알아채지 못했던 단면을 들여다보고, 미처 확인하지 못한 마음의 한 부분을 마주하게 되는 시간. 그를 통해 본인의 현 위치와 상태를 짚어 파악할 수 있는 시간을 갖는 것이 휴가의 목적이라면 우리는 반드시 휴가를 가야 한다.

뜨거운 여름, 이제 떠나야 할 시간이다. 최대한 좋은 사람들과 시간을 맞추고, 최대한 멀리, 길이 막혀도 좋으니 집을 나서라. 당신이 열심히 일을 했건 그렇지 않았건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이미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휴가를 떠날 자격이 충분히 있다. 열심히 살아온 당신, 떠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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