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ERO SPEECH] 유태인 2/3가 증발한 HOLOCOST 두 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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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ERO SPEECH] 유태인 2/3가 증발한 HOLOCOST 두 번째 이야기
  • 권영국 소장
  • 승인 2024.08.20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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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에 들어오면서 영국을 중심으로 산업혁명이 일어났고, 유럽의 많은 나라에서 유대인들의 차별 정책이 철폐되기 시작됐다. 근대 자본주의가 정착되면서 금융업에 종사했던 유대인들은 엄청난 부를 쌓아가기 시작했다.

돈의 원리로 움직여지는 자본주의였기에 유대인 가문들의 영향력은 대단해지기 시작했고 이를 보던 사람들은 텃세와 시기심이 맞물려 그들을 향한 시선은 곱지 않았다. 그 와중에 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고, 1918년 독일은 미국의 참전으로 인해 항복을 선언하게 됐다.

그로 인해 독일과 패전국들은 그들의 식민지를 잃게 되었고, 이를 주도했던 독일은 막대한 전쟁배상금으로 인해 나라가 도산의 위기를 맞게됐다. 이때 독일의 극우세력들은 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패한 것은 유대인들 때문이라는 배우중상설을 퍼뜨리기 시작했다.

그로 인해 독일인들 사이에서 유대인에 대한 증오심이 일어났으며, 유대인들이 소련을 지원했다는 이유를 들어 유대인은 공산주의 극좌파라는 음모론까지 확산됐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등장하는 인물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아돌프 히틀러이다. 퇴역 군인이었던 히틀러는 나치당 입당 후 탁월한 연설 실력으로 반유대인들을 자극하기 시작했다. 

히틀러의 연설에 감동한 독일의 시민들은 히틀러와 나치당을 지지하기 시작했고, 전쟁 패전의 책임을 유대인들에게 덮어씌웠다. 그리고 게르만 민족의 우월성을 강조하자 패배의식과 열등감에 사로잡혔던 독일인들은 히틀러에게 열광하기 시작했고, 결국 1933년 총선에서 나치당은 거듭 승리하면서 독일 정국을 장악했다. 

독일 총리 자리는 당연히 히틀러가 차지하게 됐으며, 군국주의에 사로잡힌 나치당은 모든 정당을 해체하게 되고, 유대인에 대한 박해는 더욱 심해지게 된다. 뉘른베르크 인종법이 시행되면서 독일인과 유대인의 혼인이 금지되었고 유대인의 회당과 상점들이 모두 파괴되며, 유대인 말살의 행보는 현실이 되고 있었다. 

독일은 피폐해진 경제를 단기간에 회복하기 위해 전쟁이라는 도박을 선택했다. 만일 전쟁에 승리하게 된다면 주변의 많은 나라들을 한순간에 지배하게 될 것이고 그 속국의 물적자원과 인적자원을 전부 독차지한다는 제국주의의 꿈을 가지게 됐다. 하지만 전쟁을 하려면 막대한 전쟁자금이 필요했기에 그들이 선택한 방법은 유대인들의 재산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유대인들의 모든 사업체는 강제 몰수되었고, 독일은 몰수한 자본과 자원으로 세계 2차대전을 일으키게 된다. 결론적으로 히틀러와 나치가 유대인을 핍박하고 대량 학살한 이유는 그들의 목적을 위해 유대인을 수단으로 이용한 것이다. 즉, 히틀러 자신의 권력 수단이자 전쟁비용, 그리고 독일경제를 회복하기 위한 도구로 애꿎게 유대인을 활용했다. 

유대인은 중세 시대부터 국가도 없이 떠돌았기에 많은 나라에서 차별받고 멸시받던 처지가 될 수밖에 없었고, 1차 세계대전후 독일은 패망의 이유를 탓할 대상이 필요했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독일의 감정적, 경제적으로 집권 권력의 희생양이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역사 속에서 보면서 재삼 국가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유대인들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시련과 고난은 과거 우리민족이 겪었던 고난의 역사와는 비교할 수  없는 실로 처참한 지경이었다. 그 고난을 배경으로 한 그들의 뒷심은 결속력과 나라를 향한 충성심을 세계 최고로 만들었고, 겨우 우리나라의 서울 인구밖에 안 되는 인적자원을 가지고 미국을 비롯해 세계를 움직이는 국가가 될 수 있었다는 게 그저 경이로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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