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는시간] 신발, 그 너머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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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는시간] 신발, 그 너머의 이야기
  • 김경임 교수
  • 승인 2024.04.23 10: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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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치과기공인의 삶속에서 마음의 여유를 찾아간다면 보다 넓은 시각으로 치과기공인의 삶을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격월로 만나는 ‘쉬는 시간’은 독자 여러분께 생각하는 여백의 시간을 전하는 코너이다.

 

 

삶의 대부분 시간 동안 우리는 신발을 신는다. 도시에 살건, 농촌에 살건 누구도 예외는 없다. 더러 모래사장이나 잔디밭을 일부러 맨발로 걷는 경우가 있으나, 도심 한복판을 맨발로 다닌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신발은 발을 보호하고 지탱하는 기능적 물건이다. 추위와 더위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고, 연약한 발의 피부를 오염으로부터 지킨다. 그러나 신발은 사실, 따지고 보면 단순한 기능적 물건이라기보다는 의례적이며, 계급적인 성격의 산물이다.
당신이 집을 나서기 전 가장 마지막으로 행하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라. 당신은 아마도 외출의 목적에 맞는 신발을 고르고, 당신의 발을 그 안에 밀어 넣을 것이다. 그날의 일정, 혹은 모임의 성격 따라 당신이 선택하는 신발이 다르다는 것은 신발이야말로 가장 의례적인 물건이라는 증거다.

역사적으로 살펴보았을 때, 누구나 신발을 신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고대 이집트의 경우, 신발은 귀족이나 승려, 전사들만이 소유할 수 있는 물품이었다. 특히 이 시대에 선택 받은 제왕만이 신을 수 있었던 황금 신발은 그 특별함으로 인해 왕이 가진 계급과 특권을 더욱 견고하게 하는 일종의 도구였다. 이는 우리 역사 속 신발과도 별반 다르지 않다. 임금이 신었던 태사혜나 평민이 신었던 짚신의 경우가 그러하다. 이미 그 사람의 신발만으로 우리는 충분히 계급을 나눌 수 있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더 이상 우리는 신발로 계급을 나누지 않는다. 물론, 고가의 명품 신발을 신은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의 재력을 짐작할 수는 있으나 신발 자체가 주는 신분적 의미는 이미 퇴색되었다. 오히려 과거의 계급적 성격보다는 개인의 취향과 패션을 부각하는 개성적인 면과 신발이 가진 상징성이 더 높아졌다고 할 수 있겠다. 그 대표적인 예가 하이힐과 스니커즈다.

하이힐은 애초에 여성을 위한 신발이 아니었다. 초기 하이힐은 남성 착용자의 신체적 키를 키워, 하위 계급자들에게 자신이 좀 더 높은 위치에 있다는 상징성을 부각한 신발이었다. 이러한 하이힐이 여성들 사이에서 유행하게 된 것은 15세기 터키 지역에서 만들어진 ‘쵸핀’으로부터다. 당시 ‘초핀’의 굽이 최대 30인치(약 70cm)였다고 하니, 아마도 이 신발을 신고 혼자 걷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후 18세기에 들어와 하이힐이 본격적인 여성 신발이 되면서, 몸의 실루엣과 움직임을 보여주는 성적인 이미지가 덧입혀진 상징적인 신발로 인식되게 되었다. 최근 페미니즘의 바람을 타고 이미지 전환을 시도했으나, 붉은 하이힐이 주는 상징성을 벗어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반면 스니커즈는 이러한 상징성으로부터 자유로운 편이다. 19세기 산업의 발달과 함께 시작된 스니커즈의 역사는, 러버 컴퍼니가 밑창을 고무로 만든 가볍고 편한 신발을 대량 생산하며 시작되었다. 값싸고 튼튼하기까지 했던 이 신발은 당시 대중의 사랑을 널리 받았다. 이후 21세기로 접어들며 스니커즈는 브랜드 로고의 인위적 노출 등 마케팅 전략을 통해 착용자의 개성을 보여주는 패션으로 자리 잡았다. 여기에 마이클 조던이나 런-디엠씨(Run D.M.C)와 같은 힙합 스타와 만나면서 대중문화의 아이콘이 되었다.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수집품으로서도 그 가치가 상승하는 중이니, 스니커즈의 최전성기는 바로 지금일 것이다.

신발은 우리의 삶과 문화를 대변해 주는 또 다른 얼굴일지도 모른다. 혹은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읽어낼 수 있는 정치적, 사회적 척도일 수도 있다. 당신의 신발장 안에는 어떠한 신발이 당신을 대변하고 있는가? 오늘 아침 당신이 선택한 그 신발이 특별한 의미가 있었기를 바란다. ‘좋은 신발이 좋은 곳으로 데려다준다.’라는 말처럼 오늘 당신의 신발과 당신에게 좋은 일이 있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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