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ERO SPEECH] 킹메이커 한명회. 죽어서도 목이잘린 사연은?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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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ERO SPEECH] 킹메이커 한명회. 죽어서도 목이잘린 사연은? ①
  • 베스트라인치과기공소 권영국 소장
  • 승인 2023.12.18 11: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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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통해 후손들은 교훈을 얻는다. 현대인들의 지나온 삶과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측면에서 역사는 중요하다. 치과기공사로서는 드물게 역사관련 자격증을 갖고 있는 권영국 베스트라인치과기공소장(비전포럼 명예회장)의 색다른 역사이야기를 지면에 담았다.

난마와도 같았던 정란의 시대에 그 불같은 야망과 기회를 배경으로 치밀한 지략과 대담한 결단을 행동으로 옮기며 오직 자신의 힘으로 암울했던 청년기를 탈출해 패왕의 시대를 만들면서 3대에 걸쳐 권력의 수장을 차지했고, 자신의 사위를 임금의 자리에 올리는 막강한 정치권력을 행사했던 칠삭동이 재상 한명회. 그의 호가 구정이었으니 지금의 강남구 압구정동이라는 지명은 한명회의 호에서 유래가 되기도 한 것이다.

사실 이 한명회의 평가는 대단히 호불호가 갈리는 상황이긴 하지만 조선조의 걸출한 인물임에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기도 하다. 한명회는 각종 역사드라마나 소설 등에서 자주 등장해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인물이기도 한데 이 지면을 통해 그의 살아생전 대단했던 처세와 죽어서도 목이 잘린 부관참시의 내막을 파헤쳐 보도록 하겠다.

한명회는 조선 7대왕 세조의 시기에 관직에 진출해 왕의 절대신임을 얻으며 조선전기에 우의정·좌의정·영의정이라는 그랜드슬램을 달성했으며, 조선에서는 유일하게 8대왕 예종, 9대왕 성종의 장인이된 인물이기도 하다. 그야말로 무소불위 권력의 소유자였지만, 그는 처음부터 인생이 그리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한명회는 1415년 태종 이방원의 집권기에 태어나게 되는데 달을 다 채우지 못하고 7개월만에 태어나 칠삭동이라는 별명을 얻게되는데, 지금도 조기출산은 인큐베이터에서 지내야 할 만큼 위급한 상황인데 그때는 거의 생존이 어려운 시절이었고, 설령 살았다고 해도 사람 구실을 하기 어려운 치명적인 장애를 갖게 될 가능성이 높았지만 기적같이 그는 건강하게 살아났다.

그의 집안은 조부가 조선의 개국공신이며 영의정을 지냈던 명문가였지만 태어날 때부터 예사롭지 않았던 한명회의 유년시절은 일찍 부모를 여의게 되면서 불우한 시절을 보내게 된다.

그렇게 성장한 한명회는 공부에는 큰 관심이 없었는지 과거에 번번히 낙방하며 40세 가까이 한량으로 전국을 떠돌며 다니다 결국 낙하산으로 경덕궁의 궁지기 역활을 하는 신세로 지내게 됐다.

경덕궁은 훗날 광해군때 궁궐의 모습을 갖춘 경희궁이 되지만 당시는 정식궁도 아니었고, 태조 이성계가 왕이 되기 전 잠시 거처했던 사가였으니 명문가의 집안에서 그것도 벼슬이냐는 주변의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러던 중 그와 친분이 두터웠던 권람의 추천으로 수양대군을 만나면서 인생의 반전이 시작됐다. 한명회는 수양대군을 처음 만나 그의 강한 카리스마와 권력욕을 간파했고, 수양대군에게 인생을 건 도박을 시작하게 된다.

그 만남에서 수양대군은 한명회에게 “자신의 형세가 외롭고, 약하니 어찌하겠는가”하고 물으니 한명회는 수양대군의 야심을 익히 알고 있던 터라 “종실의 후손으로서 사직을 위하여 난적을 토벌하는 것이니만큼 명분이 밝고 순하니 절대 성공 못 할리가 없습니다”라고 말하며, 수양대군의 마음을 얻게 된다. 한명회는 경덕궁직을 함께했던 홍달손, 홍유성등의 30여명의 무사들을 동원해 관료의 중심이었던 김종서, 황보인 등을 제거했던 계유정란을 성공시키며, 수양대군에게 절대 신임을 얻게 됐다.

삼국지의 유비에게 제갈공명이 있었다면 세조에게는 한명회가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는 수양대군을 위해 숨겨진 지략을 발휘하게 된다. 계유정란이란 문종의 적장자였던 어린아들 단종이 왕위에 오르자 문종에게 단종을 지켜달라는 부탁을 받은 중신들이 국정을 좌지우지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단종의 숙부였던 수양대군은 “이 나라가 도대체 누구의 나라더냐”라고 하며 그 국정의 중심에 있었던 신하들을 제거한 사건이었고, 그 정란을 실행했던 중심에는 한명회가 있었던 것이다.

한명회는 계유정란의 일등공신으로 세조에게 인정받으며, 그의 날개가 서서히 펴지게 된다. 이때 한명회는 세조의 책사로서 수양대군에 대한 관료들의 지지자와 반대파의 성향을 파악했으며, 설득할 자와 제거해야 할 관료들의 살생부를 작성해, 정란 후 급히 궁으로 입궐하는 반대파의 중신들을 기다리고 있다가 한 명 한명 처단했으며, 궁으로 오지 않은 중신들은 직접 그들의 집으로 찾아가 모두 잔혹하게 처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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