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ERO SPEECH] 해방 후 한국에 남아 있던 일본인들의 최후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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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ERO SPEECH] 해방 후 한국에 남아 있던 일본인들의 최후②
  • 권영국 소장
  • 승인 2024.12.04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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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후 당시 조선에 있었던 일본인들이 다 귀국하려 했을까? 일부 일본인들은 조선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도 있었으니 우리가 왜 고향을 떠나 일본으로 가야 하는 건지 반문하는 사람도 있었고, 여타의 이유로 조선에 잔류한 사람들도 많았다.

그들은 이미 조선에 든든한 기반을 만들어 놓았으니 그걸 놓기가 어려웠을 것이고, 초토화된 일본에 가봐야 오갈 곳이 없는 천덕꾸러기 신세가 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해방 한 달 후 경성의 YMCA에서는 조선어를 배우려는 일본인들로 가득 찼다고 하는데 잔류한 일본인들은 차라리 이렇게 된 거 신조선에 협력하여 가자는 뻔뻔한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이제 세상이 바뀌었으니 일본인들은 응당 과보를 받아야 할 것이었다. 해방된 다음 날인 8월 16일부터 23일까지 일주일 동안 조선 전역에서 벌어진 폭행 사건은 913건이었고, 조선인들이 습격한 곳은 주로 경찰서, 행정기관, 일본 신사였으며, 살인 및 테러는 267건으로 집계되었는데, 오지에서 일어났을 사건을 다 집계하기 어려웠을 것을 감안하면 그보다 훨씬 많은 폭행이 일어났을 것으로 생각된다.

특이한 사실은 일본인보다 일제에 빌붙어 살던 조선인 피해자가 훨씬 많았다고 한다. 일본인 상관들보다 그들의 앞잡이 노릇을 하며 징발에 앞장서서 일본의 개노릇을 하던 조선인들에게 악감정이 더 많았던 것이다.

이때 조선총독부는 보복이 두려워 각 기관에 걸어둔 천황의 사진을 모두 없애고, 각 신사에 있는 위패를 모두 불태우라 명하였으니 일본 특유의 얍삽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조선에 남겨진 일본인들의 삶 역시 녹록지 않았다. 일제 강점기 때 큰소리 좀 치던 일본인들은 이제 완전히 꼬리를 내리고 조선인들의 눈칫밥을 먹으며 근근이 살아가게 된다. 주로 공장, 이발소, 목욕탕 등에서 일했고, 어떤 교사는 자신이 가르치던 학생의 집에서 식모로 들어가 일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나마 남쪽에 체류해 있던 일본인들은 그렇게라도 먹고는 살았는데 이북지역에 있었던 일본인들은 사정이 달랐다. 이북은 소련의 인민위원회가 들어서면서 모든 재산이 몰수되었고, 남자들은 전후 복구의 중노동에 강제로 동원되었으며, 일본 여성들은 소련군에게 빌붙어 몸을 파는 등 많은 수모를 겪으며 살아가게 된다.

해방 후 어느 정도 안정을 찾게 되자 일본어는 자취를 감추게 되었고, 일본 간판은 폐기되었으며 방송도 일본어는 금지되었다. 미 군정은 일본인들을 모두 본국으로 돌려보낼 계획이었으나 일본은 이를 반가워하지 않았다. 나라가 초토화된 상황에서 타국에 있는 일본인들의 본토 송환을 미루게 되는데, 이는 자국의 사람들도 살기 어려운 상황에 사람들이 유입되는 것을 불편해했던 것이었다. 실제로 본토로 돌아간 일본인들은 수용소를 전전하는 등 대부분 고단한 삶을 면치 못했다.

이처럼 광복 이후 한국에 남아 있던 일본인들은 일본에서도 조선에서도 거부당하며 서럽게 살 수밖에 없었으니 자업자득이었다고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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