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ERO speech] 처세는 하륜처럼!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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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ERO speech] 처세는 하륜처럼! ②
  • 권영국 소장
  • 승인 2022.10.11 20: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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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통해 후손들은 교훈을 얻는다. 현대인들의 지나온 삶과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측면에서 역사는 중요하다. 치과기공사로서는 드물게 역사관련 자격증을 갖고 있는 권영국 베스트라인치과기공소장(비전포럼 명예회장)의 색다른 역사이야기를 지면에 담았다.

3대왕 태종이 되는 이방원은 자신을 도와주었던 사람들을 모조리 사사했던 무서운 인물로 토사구팽의 끝판왕이었다. 자신을 도와 왕으로 만들어준 원경왕후 민씨의 동생들인 민무구, 민무질 두 형제를 가차 없이 죽이질 않나 평생의 동지였던 이숙번을 귀향 보내질 않나 피도 눈물도 없이 엄청난 피바람을 일으킨 왕이 바로 이방원 이었다.
하지만 이방원이 끝까지 믿고 신뢰했던 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하륜이었다. 그 이유는 그에게는 야심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 이었다. 태종실록 32권에 하륜의 인물됨이 잘 기술되어 있는데 하륜이 천성적으로 자질이 중후하고 온화하며 말수가 적어 평생에 빠른 말과 급함이 없었으니 관복 차림으로 묘당에 이르러 의심을 결단하고 계책을 정함에는 헐뜯거나 칭송한다고 그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즉 자신을 끝없이 낮추는 겸손의 미덕이 있었고 우직함 또한 겸비 하였기에 그는 왕은 물론 주변 사람들에게 큰 신뢰를 받게 되었고 그 신뢰를 바탕으로 왕의 대리인으로 조선을 만들어갔던 인물이 하륜이었다.
그의 업적을 살펴보면 당시 한양은 여름 장마 때만 되면 배수가 좋지 않아 온통 물바다가 됐다. 때 아닌 집중호우로 온통 물난리가 나서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큰 피해가 일어나 우리를 안타깝게 하곤하는데 당시의 한양은 그런 상황이 매년 반복 되었다. 이를 본 하륜은 계책을 내는데 한양의 중심을 관통하는 토목공사를 하여 큰 수로를 만드는데 그 수로가 지금의 청계천이다. 청계천 준설 이후 매년 고통받던 물난리가 훨씬 잦아 졌다. 
그리고 백성들의 억울함을 왕에게 직접 아뢰는 시스템을 만드는데 그게 바로 우리가 잘 아는 신문고 제도이다.
신문고 제도는 중국 송나라의 등문고 제도를 조선에 도입한 것으로 사실 신문고는 대표적인 전시 행정의 하나로 볼 수 있다. 백성이 억울함을 호소하는 북을 치게 하려면 종로 한복판에 설치했으면 좋았겠는데 어이없이 창덕궁 안에 설치했다. 지금도 창덕궁에 가면 신문고를 볼 수 있는데 어느 백성이 감히 궁궐 안에 들어가 북을 칠 수 있을까 싶지만 전시행정일지라도 백성을 생각했다는 점에서는 높이 평가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 최초로 모든 백성에게 주민등록증을 만들어준 인물이 하륜이다. 바로 인력관리의 혁명인 호패법 실시인데 이 호패법을 실시하면서 조정에서는 전국의 인구수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게 됐고 군역 및 세금관리를 효율적으로 할 수 있게 되어 부국강병의 초석을 놓았다.
또한 그는 모시는 군주의 성향을 정확히 파악하는 지혜가 있었는데 태종의 숙원이 왕권 강화임을 알았던 하륜은 지금의 국무총리에 해당하는 의정부의 권한을 축소시키고 장관급에 해당하는 이호예병형공의 6조가 왕에게 직접 보고하게 하여 왕의 권한을 강화하는 6조 직계제를 완성한 인물이기도 하다. 외에도 백성들의 빈곤을 해결하기 위해 둔전법과 연미호미법등 다양한 정책들을 시도 했는데 둔전법은 정부에서 백성들에게 양질의 씨앗을 나누어주는 것이고 연미호미법은 풍년이 들었을 때 곡식을 국가에서 거두었다가 흉년이 들면 나누어 주는 구황정책으로 많은 반대에도 부딪쳤지만 이 정책은 다음 왕이었던 세종 때 그 진가를 발휘하게 된다.
하륜은 정치적. 경제적인 다양한 제도개혁을 대대적으로 실행하여 기득권의 반발을 사기도 했지만 이를 믿어주었던 태종이 있었기에 개혁을 수행할 수 있었으며 그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행정시스템은 추후 조선 운영의 기초가 되었고 그 시절 백성들은 살기 좋았던 시기로 평가되고 있다. 태종의 업적으로 알려져 있는 많은 일들은 사실 대부분 하륜의 머리에서 나온 일들 이었으니 조선을 건국한 것이 정도전이었다면 조선을 완성하게 하륜이었다고 평가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 것 같다. 목숨을 부지하기조차 어려웠던 혼란한 시기의 중심에서 겸손과 뛰어난 처세를 바탕으로 인내하며 미래를 준비 하였고 군주에게 믿음을 주며 한 나라의 2인자로 등극해 결과적으로 뛰어난 정치를 주도했던 인물 하륜! 일면으로 이시대의 우리가 기억할만한 인물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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