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ERO Speech] 왕의 요리사 숙수
상태바
[ZERO Speech] 왕의 요리사 숙수
  • 권영국 소장
  • 승인 2022.02.03 10: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역사를 통해 후손들은 교훈을 얻는다. 현대인들의 지나온 삶과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측면에서 역사는 중요하다. 치과기공사로서는 드물게 역사관련 자격증을 갖고 있는 권영국 베스트라인치과기공소장(비전포럼 명예회장)의 색다른 역사이야기를 지면에 담았다.
​




수라간의 요리사 하면 대중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던 대장금이 떠오른다. 각종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궁녀인 상궁과 나인들이 주로 궁궐의 요리를 담당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가부장적 성격이 강한 조선에 남성이 부엌에서 음식을 하는 장면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조선 시대에도 남자 궁중 요리사들이 많이 있었다.
이들을 숙수라고 칭하고 있는데 조선 시대 풍속화를 보면 음식준비로 분주한 남성들이 가득한 것을 볼 수 있다. 가장 존엄했던 왕의 안녕과 건강은 국가의 운명과 직결되는 일이었기에 임금이 드시는 수라는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였다. 최고의 음식을 만들어내는 수라간에서는 고기요리, 찜요리, 채소 요리 등 각각의 분야에 전문적인 남자 요리사가 배치되어 있었다. 세종 때 발급했던 수라간 출입증의 기록을 보면 남자가 376명 여자가 12명이라 기록되어 있다. 그러면 왜 남자 요리사를 고용해야만 했을까?
첫째로는 궁중의 까다로운 수백 가지 요리를 재래식 도구를 이용해 음식을 준비해야 했기에 엄청난 체력이 요구됐을 것이다.
둘째는 왕은 하루 다섯 끼의 식사를 했기 때문에 하루 종일 음식을 준비해야 했다. 지금의 우리도 명절이 되면 음식 준비를 하는 주부들의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닌데 이것을 매일 빠짐없이 한다고 생각하면 보통의 노동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왕가에서는 정규식사 이외에도 주안상이나 다과 등 수시로 음식을 대령해야 했기에 24시간 대기해야 했다. 이들을 대령숙수라 했는데 대령숙수는 수라간의 최고 요리사였으며 2교대로 근무했다. 그리고 때로는 고관대작의 잔치에 불려가 출장 요리를 해야 하는 등 왕실의 요리사는 아주 고된 3D 업종 중의 하나였기에 여성이 담당하기엔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셋째는 음식이 곧 약이라는 약사동원을 중요시했다. 궁중요리사는 요리뿐 아니라 의학지식을 갖추어야 했기에 여성보다는 남성의 의학지식이 우월했다고 판단하였기에 남성들이 그 업무를 주로 맡아 했던 것이다.
숙수의 신분은 대부분 최하층인 관노였고 혹여 음식에 문제라도 생기면 처벌을 면치 못했다.
예로 1903년 고종 때 홍합을 드시던 고종의 치아가 부러진 일이 생긴다. 이 사건으로 처벌받을 사람들은 모두가 남자 요리사였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그러면 그 많던 상궁과 나인들은 도대체 어떤 일을 했을까? 나인들은 음식을 나르는 서빙, 설거지 등 요리사를 보조했던 역활을 주로 했으며 수라간 상궁들은 나인들을 감독하고 지휘했지만 사실 직접 요리는 하지 않았다고 한다.
격변의 시대였던 구한말 고종이 일제에 의해 강제 페위 된 후 궁중에도 구조조정이 시행되었는데 내시들과 숙수들은 대다수 해고됐고 그 빈자리가 어쩔 수 없이 상궁으로 대체 되었으며 고종 때 마지막 숙수였던 ‘안순환’이라는 인물은 궁에서 해고되고 남자 요리사였던 대령숙수와 관노였던 기생들을 모아 1909년 조선 최초의 궁중 요리집인 명월관을 개업하면서 대중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도 하였다. 왕이 드시던 수라를 일반인이 먹을 수 있다는 것은 당시엔 대단히 놀라운 일이었을 것이다.
왕실의 수라를 책임졌던 부서는 이조 산하의 상용원이었다. 상용원에서는 대전. 왕비전. 세자전의 모든 수라를 관장하였고 특히 임금의 수라는 내시부. 내명부가 함께 관장하였고 수라의 최고 책임자는 종2품 상선내시였다. 실록에 나와 있는 기록을 보면 숙수가 되는 것을 기피 했다는 기록이 자주 등장하는데 그만큼 힘들었던 직종 중에 하나였음을 엿볼 수 있다.
이렇게 수백명의 사람들이 임금의 식사를 정성껏 준비하여 드시게 했음에도 사실 조선왕들의 평균 수명은 고작 40대 중반이었으니 그 부분이 참 모순적이다. 아마 과도한 영양공급과 운동부족이 원인이 아니었나 싶다. 거금을 주고 산삼을 구입 해 먹는 사람보다 산삼을 캐러 다니는 사람이 더 건강하다는 원리와 비슷한 맥락이 아닌가 싶다.
풍요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겠다. 세상이 이러니 저러니 해도 지금의 우리는 시대를 잘 만나 세종대왕께서도 누리지 못한 호사를 누리고 사는 행운아들이 아닌가 싶다. 우리에게 주어진 풍요로움에 다시 한번 감사의 마음을 가져보고 더불어 나눔의 마음도 가져본다면 이 세상이 더 아름다워지지 않을까 생각 해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