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cturer Interview] 인생 바꾼 디지털 파샬 덴쳐의 전도사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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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cturer Interview] 인생 바꾼 디지털 파샬 덴쳐의 전도사 되고 싶다
  • 윤준식 기자
  • 승인 2021.11.04 16: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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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지 않고 정진해 나간다면 꿈은 이루어질 것

 

“많은 분들이 스트레스 없이 디지털 프레임 제작을 쉽고 편하게 할 수 있도록 전파하겠습니다” 김경진 경진치과기공소 소장은 지금 디지털 파샬 덴쳐에 푹 빠져있다. 늦은 나이에 천직임을 깨닫고 도전한 치과기공사와 디지털 치과기공이 그의 성격은 물론 인생까지 바꿔놓았다고 한다. 전북 부안의 작은 시골에서 남들이 가지 않았던 길을 걸으며 태평양 건너 북미까지 진출한 그의 특별한 기공 인생 이야기를 들어봤다.
윤준식 기자  zero@dentalzero.com

 

어떤 계기로 치과기공사가 되셨나요?
지금 제 기공소가 있는 장소가 아버지 그리고 우리 가족의 터전이었습니다. 선행을 많이 베푸셨던 아버지께서 너무 이른 나이에 작고하셨죠. 당시 저는 갑작스럽게 임종을 맞아서 너무 큰 충격에 대학생활을 적응할 수가 없었습니다. 또 성적에 맞춰서 진학한 4년제 환경공학과는 제 적성에 맞지 않았어요. 그래서 중도하차를 하게 됩니다.
군대를 전역하고 또 이런저런 일을 하면서 방황하던 중 이전 대학에서 만났던 친구가 의료기사직을 추천 해주었습니다. 자기는 4년제 나와서 다시 물리치료과에 입학했는데 너무 만족한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보건대학에 있는 과를 검색을 해보았으며, 그때 치과기공과를 알게 됐습니다. 성격에도 잘 맞을 것 같았고, 열심히 하면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그렇게 친구가 권유해 준 말로 인해 제 기공인생의 서막이 시작되었네요.

 

늦은 나이에 입학한 대학시절은 어떠셨는지요?
서른에 다시 입학한 대학의 생활은 두려움이 아닌 설렘과 기대감 그리고 저의 성격을 바꿨던 중요한 시기였어요. 스무살 학우들에 비해 많이 늦어서 모범도 보여줘야 하고 의젓함을 보여줘야 하는 위치였죠. 또 나이가 늦은 만큼 조바심만 커지기도 했죠.
그래도 그 당시에 보건직 열풍이 불어서 저처럼 늦게 기공과에 입학한 분들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제 위로도 3분이 더 계셨거든요. 그 분들과 항상 같이 식사하며 같이 공부했어요.
1학년 2학기 때에는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을 탈피하고자 과대표를 하게 됩니다. 어려서부터 내성적이었던 제 성격을 바꿔보고 싶었죠. 
학생 때 최운재 교수님의 가르침을 받았고, 최 교수님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덴쳐도 하고 있습니다. 이 시간을 빌어 작고하신 최운재 교수님께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이번에는 졸업 후 기공인생 스토리가 궁금합니다. 처음부터 파샬 덴쳐를 선택하셨나요?
집 가까이에 소개받은 전주의 TOP 치과기공소에서 방학 때 실습을 다녔습니다. 가족같은 규모여서 따뜻한 정과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많이 있었어요.
소장님 덕분에 저는 그곳에서 일찍이 파트를 결정하게 됩니다. 또 조그마한 형태를 완성하는 것보다는 스케일이 큰 구조물들이 저에게 맞는 것 같았죠.
그래서 덴쳐 선생님 보조를 하면서 핀작업 및 마운팅 등 기공을 시작하기 위한 밑거름들을 배우게 됩니다. 그렇게 지내다가 졸업을 하던 시점이 왔는데, 결국 다른 기공소로 취직하게 됐고 이어서 다른 지역의 기공소에서도 일하게 됐었는데 타지에서 일하는 게 참 힘들었어요.
그렇게 8개월 정도 근무하고 가을 즈음에 TOP 치과기공소 소장님의 부름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손발 맞췄던 선생님과 다시 파샬&덴쳐 기공을 하게 되죠. 

 

 

디지털화하기 어려운 파샬 덴쳐를 실현하기 쉽지 않으셨을텐데, 어떤 우여곡절이 있으셨나요?
2018년 겨울 즈음에 덴탈2804 홈페이지 작품 전시란에서 한 사진을 보고 충격을 금치 못했었습니다. 바로 서아라 소장님이 올린 왁스블록을 밀링해 제작한 패턴들이었죠.
디자인 프로그램은 exocad를 사용하셨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죠. 그 이듬해인 2019년 초에 Dental Wings 프로그램과 스캐너 그리고 3D 프린터를 보게 되었습니다. ‘아 이제 파샬도 디지털 시대가 오나 보다’라고 생각했죠. 그 때 제 머릿속은 온통 ‘어떻게 장비를 사지? 어떤 장비를 사야 하나?’ 이런 생각 투성이었죠. 그러던 중 DOF 스캐너부터 들이게 됩니다. 디자인 연습하면서 장비는 밀링머신을 선택했습니다. 본격적인 디지털을 접하게 된 거죠. 
우여곡절이라면 템플릿에 따른 가공시간이었습니다. 2년이 지난 시점이 되어서야 업체에서는 제가 원하는 만큼의 서비스를 제공해주었습니다. 값비싼 장비를 사도 지원되지 못하는 부분이 정말 어렵더군요. 앞으로도 좀 더 공부해서 서로 협조해보면 만들어지리라 생각을 합니다. 업체에서도 노력해야 할 부분이고요.

 

해외 기공물 거래도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작은 시골마을인지라 더 특별한데요. 계기와 근황은 어떠신지.
디지털을 시작하고 3개월 정도 경험을 한 후 그 해 가을부터 시작하게 됐습니다. 디지털 프레임이 모델이나 구강 내에 전혀 문제가 없어서 ‘파일만 받아서 제작해도 되겠는데?’ 이런 생각을 하던 중에 미국에서 먼저 연락이 왔습니다. 
한국 분이었어요. 아날로그 파샬 세미나 코스를 수강할 때 같은 기수도 아니며 얼굴 한번 본 적도 없는 분인데요. 대전의 한 기공실에서 일했던 걸로 기억해요.  
일하다 캐스팅 문제가 생기거나 케이스에 따른 디자인적인 부분들에 대한 것과 제작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에 대해서 제게 많이 물어봤던 기억이 있어요.
그분이 미국으로 이민을 간 후 그곳의 일을 저에게 보내주는거죠. 제가 디지털 워크플로를 올리는 것을 보고 관심을 갖게 되셨다고 합니다(웃음).
이러한 부분들도 디지털이라 가능한 거겠지요. 아직도 미국시장은 개척할 분야가 많습니다. 특히 플렉시블 덴쳐의 수요가 많다고 합니다. 앞으로는 디지털을 활용하여 아날로그에서 완성하는 플렉시블 덴쳐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디지털을 활용하니 일도 수월해지고 정확도도 잘 맞고 너무 좋습니다(웃음).

 

세미나 강사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와 소장님만의 세미나 컨셉 등을 소개해주신다면요.
디지털을 접한 지 2년여 가까이 되어가는 시점에 DOF연구소에서 exocad의 디지털 파샬덴쳐에 대한 세미나를 해줄 수 있는지 요청이 왔어요.
갑작스러웠지만 언젠가는 해보고 싶다고 머릿속에 그렸던 부분들이어서 부족하지만 해보겠다고 했습니다. 그 이후에는 덴탈2804 아카데미 세미나의 3Shape 파샬 캐드 강사가 되었습니다. 또 이번 8월에는 KDTEX 2021 온라인학술대회 영상촬영으로 스튜디오에서 강의도 해보고요, 10월에는 광주광역시치과기공사회 보수교육도 다녀오고 Arum Dentistry의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정말 올해는 바쁘네요. 뜻깊은 한 해를 보내고 있는 것 같아요.
저는 학교에서 강의를 할 때도 학생들을 위해서 여러 번 반복 학습을 시킵니다. 처음에는 생소하고 어렵게 느껴지는 부분을 이해하기 쉽고 자연스럽게 습득할 수 있도록 교육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처음 인연을 소중히 여기며 오래도록 같이 공부할 수 있는 분들을 많이 만나서 종종 모임도 갖고 이런 저런 사는 얘기를 해가며 지내면 좋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지금도 아날로그 세미나에서 알게 된 스승님, 지인분들과 10여년이 지났어도 모임을 열어 만나곤 했는데 지금은 코로나19로 2년 이상 만나지를 못하네요. 또 세미나의 묘미는 첫날 일정 후에 갖는 술자리라고 생각합니다. 즐겁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제가 아는 좋은 방법들은 많이 공유해 보려합니다.

강사로 활동하기까지 어떤 노력을 하셨는지, 또 기억에 가장 또렷하게 남아있는 순간은 언제죠?
무엇보다도 먼저 부딪혀보고 재료 소비해가며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경험해 본 게 아닐까요?
실패를 많이 해봐야 올바른 방법을 찾을 수가 있습니다. 제가 지금껏 살아오면서 실패의 쓴맛을 가장 많이 본 게 3D 프린터네요. 1년 정도를 실패해가며 지냈습니다. 그러면서 많은 공부를 하게 되었죠. 물론 재료비도 많이 날렸고요(웃음).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라면, 첫 세미나였던 DOF의 exocad 파샬 디자인과 디지털 적합에 대한 강의입니다. 소수정예 인원이었지만 다들 집중해 주시는 모습에 저도 강의를 즐겼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에 감사패 받는 순간에 사진촬영을 하다가 그만 몸을 틀면서 감사패를 바닥에 떨어뜨려서 박살 내먹었던 순간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웃음).

 

 

강단에 오르는 것을 꿈꾸는 학생이나 후배 기공사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
강단에 오르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무언가를 하고자 할 때 먼저 준비가 되어있으면 기회는 언젠가는 찾아온다고 생각합니다. 한 치 앞도 모르는 인생살이에서 내일 당장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목표를 명확하게 설정해두시고 그 목표를 향해 계획을 세워서 집중한다면 성취해 내실 수 있으리라 생각을 합니다. 훗날 후회 없게 하루하루 정진해 나간다면 꿈은 이루어지리라 생각합니다.

소장님의 인생에서 기공은 어떤 의미인가요?
기공은 제 인생에 있어서 삶의 전부입니다.
기공밖에 몰라서 주변도 못 돌아보고, 사무실에만 있어, 집안일은 신경도 못썼던 그런 생활을 10년 정도 했네요. 하지만 소정의 목표에 도달하기까지는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이 그런 시점이고요.
온갖 세미나 다 다니면서 아날로그 기공을 섭렵해놔서 이제 좀 편해지나 싶었더니만, 디지털이 나와서 또 2년 동안 밤잠 설쳐가며 또 공부하며 일하고,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데요. 앞으로는 삶이 좀 더 편해졌으면 하는데 자꾸 일들을 벌이네요(웃음).
이 정도 선에서 정진하면서 앞으로는 제 자신을 사랑해주고 주변도 돌아보면서 살아가고 싶습니다. 조금만 더 고생하고 편해졌으면 좋겠습니다.

향후 세미나 계획과 개인적인 목표가 궁금합니다.
아날로그적인 기본 이론을 토대로 디지털 파샬 프레임의 디자인과 제작에 대해서 입문할 수 있는 교육과 제게 주어진 교육들도 병행해 나갈 생각입니다.
좋은 것은 널리 알려야 한다고 하니 많은 분들이 스트레스 없이 디지털 프레임 제작을 쉽고 편하게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특히 주위에 같은 길을 걷는 동료들과 시기와 경쟁보다는 합심할 수 있는 부분들은 함께 하고 서로 우애를 다지며 지내고 싶습니다.
개인적인 목표로는 지금 강의를 나가는 원광보건대학이 좀 더 발전되는 학교가 될 수 있게 학부 과정은 물론 새로 신설된 디지털 국소의치 과정에 대해 좀 더 많은 부분을 교육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위드 코로나가 되면 그루터기 봉사활동에 다시 참여해서 좋은 선후배님들과 틀니세척 봉사활동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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