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man Sense] 아름다운 동행을 추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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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man Sense] 아름다운 동행을 추억하며
  • 정선미 대한여성치과기공사회 교육이사
  • 승인 2021.10.10 13: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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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치과기공사 중 다수는 남성이었지만 여성의 비중이 점차 커지고 있다. 기공사라는 직업 자체가 섬세한 손길이 필요한 만큼 여성치과기공사들의
진출은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타이트한 업무 강도와 출산 등 현실적인 어려움도 존재한다. Woman Sense는 여성치과기공사들의
솔직담백한 고백을 담은 지면으로 이번 호에는 정선미 대한여성치과기공사회 교육이사의 원고를 게재한다.

대한여성치과기공사회 홍보영상을 제작하게 되었다. 초창기 여성회 활동사진과 기록들을 찾아 자료를 수집, 정리해서 각 카테고리 별로 국내봉사, 해외봉사, 스마일 마라톤, w-study, 문화의 밤, 몰라 영화제, 학술제, 각종 회의 모음을 정리해서 1차, 2차, 3차의 피드백을 거쳐서 전체영상을 마무리 했다. 일을 하면서 업체와 전화하고 결정하며 오랜만에 설레기도 했다. 지금은 회장님, 부회장님이 되신 분들, 아이 엄마가 된 임원들의 활동사진들은 한참 동안 넘겨보았다. 
사진 속 나를 찾아보던 중 처음 참석해 찍은 단체 사진에서 약간의 어색함을 가지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이 사진을 찍기까지 여성회에 대해 동경만 하면서 한참을 보냈다. 학술제에 가면 항상 한 공간에서 분주히 움직이면서 여성회를 홍보하고 재능기부도 하는 모습들이 멋져 보였던 것 같다. 나도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이 많아질 즘 둘째 아이를 임신 했고 일을 하면서 출산하기까지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때는 직원으로 일하던 중이라 임신 중 11시가 넘게 일을 했고 설상가상 아이가 한 달이나 빨리 태어나 건강이 매우 나빠졌다. 출산 후 다시 일을 하는 것 또한 어려웠다. 
출산과 복직 과정을 거치면서 여성 기공사라면 겪을 수밖에 없는 이런 일들에 대해 여성회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묻고 싶었고 막무가내로 회의 장소로 찾아갔던 것이 여성회와의 첫 인연이었다. 회장님께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 하시는지 물었고 회장님 또한 기공소에 출산과 복직을 하는 기사님이 있다면서 공감해 주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여성회에 동참하고 싶은 마음은 더 커졌고 마침 1박2일 임원 연수회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가고 싶은 마음에 덜컥 참석했는데 임원 연수회에 임원도 아니고 여성회 회원도 아닌 사람은 나뿐이었다. 소개 시간에 했던 말이 아직 기억난다. “여성회라는 문 앞에서 서성인 지 오래입니다. 여성회와 오래 동행하고 싶습니다” 10년 가까이 여성회와 같이 하면서 그 때가 가장 많이 생각난다. 
다음 행사를 기대하고 있을 때쯤 현충원 봉사 일정이 나왔다. 어색함이 두려워 딸에게 같이 가자고 일주일 동안 졸라서 함께 나섰다. 서먹할까 걱정했지만 임원분들이 항상 같이 만났던 것처럼 반갑게 인사해 주셨다. 현충원 봉사는 현충탑 및 위패봉안관 참배와 묘비 닦기, 잡초 뽑기 등을 진행하며 딸에게 현충원과 봉사활동의 의미를 알려주기도 했다.
이후로 요양원 봉사도 참여했는데 어르신들의 틀니 세척하는 봉사는 비위가 약한 나에게 큰 보람을 느끼게 했다. 젊은 여성회 회원들이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열정에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어느 부회장님이 막 가져온 틀니를 세면장 바닥에 앉아서 옷이 젖는 것도 모르고 열심히 씻는 모습이 잊을 수 없는 장면이었다. 
올해는 코로나19로 봉사하기 어려워져 거리 두기를 하면서 할 수 있는 무료 급식 배식소에서 봉사를 하게 되었다. 단무지 포장은 조금 과장해서 평생 먹었던 양보다 많이 포장한 것 같다. 참여한 회원들이 각각의 자리에서 바쁘게 움직였고 급식 배분 장소로 내려가니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있었다. 급식배분 후에도 한참을 쪼그리고 앉아서 무 채 썰기까지 끝난 이후에야 봉사활동이 마무리 되었다. 일을 하면서 힘들다는 생각을 했지만 봉사라는 것이 하고 나면 나눔의 행복을 느끼고 기분이 좋아졌다.
봉사 활동도 좋았지만 드디어 나에게 여성회에서 책임감 있는 맡을 기회가 왔다. 법제이사로 임명되면서 성회롱 고소 고발 건을 돕게 됐다. 일을 마치고 늦은 밤에 대구까지 가서 회의를 하고 성희롱 고발 문제를 위해 문서를 작성하는 등 처벌이 내려 질 때까지 같이 했었다. 이 과정에서 또 다른 여성회 회원이 성희롱을 당하고 있었지만 직업 특성상 소문이 두려워 이야기하기를 조심스러워 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성희롱은 당사자 입장에서 매우 어려운 문제이다. 말하기도 쉽지 않고 그렇다고 참고 있기에는 너무나 힘든 일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 내어 말해야 한다. 이것이 다른 피해자를 막는 일이기도 하다. 여성회가 힘이 되어 드리겠다고 감히 말씀 드리고 싶다. 
여성회에는 기공소를 오픈해서 성공 스토리가 있는 기공소 소장님들, 학교에서 기공사를 양성해주시는 교수님들, 일선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치과기공사들, 아이를 키우면서 기공 일도 하느라 하루하루를 정신없이 지내는 기공사 등 다양한 특성을 가진 회원들이 많이 있다. 이번 글을 보면서 ‘여성회는 이런 일을 하는구나 힘 된다’ 느끼시고 아름다운 동행을 같이 하는 분들이 많아지길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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