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ERO Speech] 효창공원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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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ERO Speech] 효창공원을 아시나요?
  • 윤준식 기자
  • 승인 2021.04.28 13: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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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통해 후손들은 교훈을 얻는다. 현대인들의 지나온 삶과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측면에서 역사는 중요하다. 치과기공사로서는 드물게 역사관련 자격증을 갖고 있는 권영국 베스트라인치과기공소장(비전포럼 명예회장)의 색다른 역사이야기를 지면에 담았다.

우리의 주변에는 무심코 지나쳐 왔지만 그곳에 숨어있는 유래와 이야기를 잘 모르고 있는 곳이 많다. 그중에서도 이번 호에는 왠지 소외되어 있는 장소 중 하나인 ‘효창공원’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효창공원의 본래 이름은 ‘효창원’이었다. 조선시대 왕실의 무덤은 크게 세 가지 종류로 나뉘는데, 왕과 왕비의 무덤을 ‘능’이라 하고 세자와 세자빈 또는 일부 후궁의 무덤을 ‘원’이라 하며 그 밖에 왕실 종친들의 무덤을 
‘묘’라고 칭한다. 그렇다면 효창원은 과연 누구의 무덤일까?

 

그 정체를 알기 위해서는 조선후기 르네상스를 꿈꾸었던 정조의 아름다운 러브 스토리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정조가 끔찍이 사랑했던 유일한 여인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본명이 ‘성덕임’으로 알려져 있는 ‘의빈성씨’다. 본래 덕임은 정조의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를 수발하던 나인으로 세자시절 정조가 어머니께 방문하던 중 그녀의 아름다운 자태와 지혜로움에 마음을 빼앗겼다. 
그 후 세자인 정조는 덕임에게 청혼을 하지만 덕임은 목숨을 걸고 거절했다. 당시 세자빈이었던 효의왕후가 후사를 보지 못한 상황에 후궁으로 들어가는 건 예의가 아니라는 이유였다.
하지만 정조의 정비인 효의왕후는 결국 자녀를 생산하지 못했다. 그 후 정조는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후사가 없다는 이유로 후궁을 들이게 됐으나 후궁에게 별 관심을 갖지 않았다. 정조가 보위에 오르고 15년을 기다려 다시 덕임에게 청혼을 했으나 덕임은 또다시 같은 이유로 청혼을 거절했다. 당시 궁녀가 성은을 거절하는 일은 사형을 면치 못할 중죄였는데, 그렇다고 사랑하는 여인을 벌할 수도 없으니 정조는 그녀의 하인들에게 벌을 내렸다.

 

차인 남자의 구겨진 자존심인 것 같기도 한데, 결국 덕임은 늦은 나이에 정조의 청혼을 받아들이고 의빈에 책봉된다. 그녀의 나이 30세, 정조의 나이 31세가 되던 해였다.
정조는 어렵게 맺어진 사랑에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의빈성씨는 정조에게 첫아들을 선사하는데 정조는 너무 기뻐 그 아들이 세 살 되는 해 바로 세자로 책봉하니 그가 바로 문효세자다. 하지만 행복도 잠시 이들의 애틋한 사랑을 하늘이 시기라도 했던 것인지, 그 후로 딸 하나를 얻지만 태어나자마자 죽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세자로 책봉된 문효세자 또한 병으로 5살에 죽게 된다. 의빈성씨는 큰 슬픔을 이기지 못해 병이 들고 문효세자가 죽은 그 해에 태아를 복중에 둔 채 사망하기에 이른다.

 

이 문효세자와 의빈성씨를 모신 곳이 바로 효창원이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에 일제는 민족말살 정책의 일환으로 효창원을 공원으로 만들기 위해 문효세자와 의빈성씨의 무덤을 파헤쳐 고양시의 서삼릉으로 강제 이장하고 효창공원이라는 이름으로 고쳐버린다.
광복 후 김구 선생은 독립운동을 하다 돌아가신 분들의 유해를 효창공원으로 모셔왔고 정작 본인도 1949년 테러를 당해 이곳에 영면하게 된다.
이 유래 깊은 효창공원에는 김구 선생을 비롯해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의사 등이 잠들어 계시며 그분들 옆에 안중근 의사의 가묘도 조성되어 있다. 그 후 전 국민을 월드컵의 열기로 살맛 나게 했던 2002년에 (사)백범기념관건립위원회가 효창공원에 백범기념관을 개관하며 민족을 위해 헌신했던 김구 선생의 유업을 상고하게 했다.

 

효창운동장을 이곳에 건립한 것은 한 가지 아쉬운 점이다. 이로 인해 역사 깊은 효창공원의 의미가 퇴색된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의 마음도 들고 효창공원의 가치를 생각한다면 더 신중했어야 되지 않았겠나 싶기도 하다.
이렇듯 효창공원은 우리가 가볍게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무게감 있는 장소다. 
숲이 잘 조성돼있어 고즈넉한 느낌마저 드는 효창공원. 정조의 숨결이, 그리고 조국 광복을 위해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렸던 의인들을 생각하며 주말에 가족들과 같이 한번 방문해 보는 것도 참 의미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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