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ERO Speech] 억겁의 세월을 흘러온 한강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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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ERO Speech] 억겁의 세월을 흘러온 한강의 역사
  • 권영국 소장(베스트라인치과기공소)
  • 승인 2021.02.25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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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통해 후손들은 교훈을 얻는다. 현대인들의 지나온 삶과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측면에서 역사는 중요하다.
치과기공사로서는 드물게 역사관련 자격증을 갖고 있는 권영국 베스트라인치과기공소장(비전포럼 명예회장)의 색다른 역사 이야기를 지면에 담았다.

세계의 모든 문명의 발상은 강을 중심으로 형성됐다. 물은 곧 생명의 원천이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도 우리와 함께 살아 숨 쉬고 있는 한강. 아마도 이 한강이 없었다면 서울은 지금처럼 한 나라의 수도로 부흥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이번 호에서는 한강의 역사와 그 주변지역의 유래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한강의 중요성이 대두되었던 시기는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고구려, 백제, 신라가 경합을 벌였던 삼국시대는 누가 한강 유역을 차지하느냐에 따라 그 나라의 흥망성쇠가 좌우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가장 먼저 한강을 차지했던 나라는 백제다. 온조왕이 백제를 건국한 장소가 바로 한강 유역인 위례성(지금의 송파구 일대)이기 때문이다.
백제가 가장 번성했던 시기는 근초고왕이 등장했던 4세기였다. 백제의 정복 군주 근초고왕은 지금의 중국과 일본에까지 큰 영향력을 미쳤고 고구려의 평양성까지 공격할 정도로 영토를 확장해 백제의 가장 번성한 시기를 만들었다. 이 평양성 전투에서 고구려의 고국원왕이 전사해 고구려로서는 큰 아픔이 있었던 전투로 기록된다.
그 후 5세기에는 고구려가 한강 유역을 차지했다. 한강 백제를 침략한 근본적인 이유는 고국원왕의 복수를 위해서였는데, 이 무렵은 고국원왕의 손자인 광개토태왕과 그의 아들 장수왕이 큰 주가를 올리며 고구려가 크게 번성했던 시기였다.
6세기에는 신라의 진흥왕이 한강 유역을 차지하면서 전성기를 맞게 된다. 이렇듯 한강은 군사적. 전략적 요충지로서 매우 큰 의미가 있었던 곳임을 역사를 통해 알 수 있다.

옛 문헌에 ‘아리수’ 또는 ‘한수’라고 기록돼있는 한강은 총 417km를 흐르고 있으며 남한에서는 낙동강 다음으로 긴 강이다. 금강산에서 발원한 북한강과 태백시 창죽동 검용소에서 발원한 남한강이 양수리에서 만나 한강의 본류가 시작된다.
양수리는 두 개의 큰 물줄기가 만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며 우리 고유의 언어로는 ‘두물머리’라고도 불리운다.
지금까지 설명한 한강은 지금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한강이고, 조선시대에는 그 개념에 다소 차이가 있었다. 지금의 천호대교 인근부터 한강으로 인지되어 있었고 그 시기 한강의 이름은 경강 혹은 용산강으로 불렸다. 
이름에서 알겠다시피 조선시대 한강의 중심은 바로 용산이었다. 용산이 중심인 이유는 전국의 세곡선이 모이는 포구이며 서울역을 경유해 남대문으로 이어지는 궁궐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기 때문이다. 

용산을 중심으로 동쪽에 있는 강을 ‘동강’, 서쪽의 강을 ‘서강’이라고 했는데 ‘동호대교’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유도 이런 유래에 기인한 것이다. ‘동호’는 물길이 동호대교 인근에서 유속이 느려져 마치 호수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동호대교 인근에는 유명한 정자가 있다. 바로 ‘압구정’인데, 세조대의 권신 한명회가 갈매기와 노닌다는 뜻으로 지었다. 지금의 ‘압구정동’이라는 지명은 여기서 유래됐다.
서쪽 강에 있는 큰 다리라는 뜻인 ‘서강대교’도 이와 같다. 
마찬가지로 조선시대부터 지금까지 포구의 이름들이 이어져오고 있다. 한강진을 비롯해. 노량진. 양화진. 송파나루. 마포나루 등이 있는데 각 포구마다 들어오는 물건들이 다 달랐다. 용산은 쌀을 중심으로 하는 세곡선이 집결했고 마포나루는 주로 소금과 젓갈류로 유명했다. 근방인 ‘염리동’은 소금창고가 즐비했던 곳에 기인하며 지금도 염리동 옛길을 보존하고 있다. 특히 송파나루는 황해도. 강원도에서 수집된 건축용 목재가 주로 드나들던 포구였다. 

조선은 사농공상의 직업적인 위계가 있던 나라였다. 선비가 으뜸이요, 농민이 두 번째며 장사치를 가장 천하게 여겼다. 하지만 조선 후기 상업의 발달로 유통이 급부상하면서 송파에는    ‘도고’라는 새로운 상인 계급이 등장했다. 큰 자본력을 바탕으로 상권을 독점했던 세력들로 이 시기에 나왔던 소설이 매점매석의 정석을 보여준 ‘허생전’. 그리고 몰락해가는 양반들을 비웃던 ‘양반전’ 등이다. 
무심코 지나쳐왔지만 우리의 선대들의 애환이 묻어있는 서울의 유서 깊은 지역들을 알고 간다면 그곳이 왠지 새롭게 보일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억겁의 세월을 흘러온 한강. 아름답게 보존하여 우리의 후손들에게 잘 물려 주어야 할 책무를 느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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